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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답답함과 목마름”, 전병욱 목사 칼럼
작성자 bsbcyp
작성일자 2021-10-29
조회수 28
추천수 8





“답답함과 목마름”(2021.10.29.금.전병욱 컬럼)

           

  크리스천이면서 왜 답답하고 목마른가?

예배가 막혔기 때문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예배는 생명과의 접촉이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만나주신다.(요4:23)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예배 드리지 않는가?

근데 왜 답답함, 목마름은 사라지지 않는가?

바른 예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바른 예배란?

               

  사마리아 사람들은 거절감이 심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과 함께 성전을 짓자고 했다.

혈통과 정통성 문제를 들면서 거절 당한다.

열등감과 분노에 사로잡힌 그들은 “그리심 산”에 따로 성전을 짓는다.

“원조”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윗 이전의 야곱에게서 뿌리를 찾는다.

그리고 다윗 이후의 모든 기록을 거부한다.

정통성이 없으니, 더 열정적, 더 흥분하는 예배를 드렸다.

다윗이 나오는 모든 성경을 부정하니 “모세5경”만 믿는다.

결국 말씀 없는 뜨거움, 열정이 되었다. 그게 “사마리아 예배”다.

             

  유대인은 정통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했다.

말씀을 받은 자들이란 자부심이 점점 형식화되었다.

 입술로는 경배하지만 마음은 멀었다.

바리새인의 예배가 바로 이런 식이었다.

말씀은 받았는데, 불꺼진 말씀이다.

외식으로 포장된 예배다.

이게 “유대인 예배”다. 정통인데, 죽은 정통이다.

               

  예수님은 “영과 진리의 예배”를 말씀한다.

 “성령 안에서의 예배”(worship in Spirit)과

 “말씀 안에서의 예배”(worship in Truth)를 뜻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성령 안에서의 예배”는 이성과 지식이 아니다.

교회 안에 “무슨 학교” “무슨 훈련”이 너무 많다.

예배는 성령의 기름부음과 만지심 속에서 드려져야 한다.

유대인들이 모르는 성령의 불로 드리는 예배가 진짜이다.

갈멜산의 엘리야의 예배가 바로 이런 예배다.

불로 응답받는 예배이다.

예배에는 성령이 있어야 한다.

                   

  “말씀 안에서의 예배”는 성경 말씀에 기초한 예배를 말한다.

예배는 “그것이 가장 가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이 최상의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동시에 “세상이 소중하다고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상대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핍박, 손해를 가할 때, 드리는 예배가 더 강력하다.

세상의 위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

가난해도 좋다. 병들어도 좋다. 손해봐도 좋다는 것이다.

그게 최상의 가치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이다.

                             

  네팔에서 열리지 않는 자물쇠 경험을 했다.

열쇠 뭉치 2개를 들고 왔는데, 100개도 넘었다.

하나 하나 테스트 해도 열리지 않았다.

몸은 아픈데, 열리지 않는 답답함이 심했다.

은혜를 구하고, 무작위로 몇 개 시도했는데, 열렸다.

그 기쁨, 그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예배가 뚫리면, 더 이상 답답하지 않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다.  

예배의 길이 열려야 인생의 길이 열린다.

모든 것이 뚫린다.

죽었던 것이 살아남.

병든 것이 나음을 입음, 자던 것이 깨어남이 예배에 달렸다.

예배가 중요하다. 예배가 모든 것을 살린다.

예배에 목숨을 걸라. 이 말보다 중요한 말은 없다.

더 이상 답답함, 더 이상 목마름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